R.미첼의 설계에 의해 1936년 영국의 슈퍼머린사(社)가 제작한 것으로, 1938년 영국 공군에 배치된 이래 47년까지 2만 351대가 생산되었다. 20종 이상의 개량형이 제작되었으며, 가장 많이 제작된 5형은 길이가 9.1m, 너비 11.3m, 중량 약 2,890kg, 최대시속 약 600km, 항속거리 약 1,800km이며, 20mm 기관포 2문과 7.7mm 기관총 4문을 장착하였다. 자매기로는 함상기(艦上機)인 시파이어(Seafire)가 있다.
독일에 [메서슈미트 박사]가 있었다면 영국에는 레지널드 미첼이 있었다.
그는 1931년 최고속도 시속 550km의 초고속으로 [슈나이더 컵 스피드 레이스]에서 우승한 슈퍼마린사의 수상기를 제작한 경력이 있었다. 이 기체가 훗날 영국을 지킨 전투기 스핏화이어의 근간을 이루리라고는 당시 아무도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이후 레지널드 미첼은 폐결핵으로 건강이 악화되었으며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하지만 1933년 유럽에서 요양중 독일의 항공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전쟁이 멀지 않았음을 직감했고, 신형 전투기의 개발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더 이상 요양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는 의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오로지 스핏화이어의 개발에 전념한 미첼은 드디어 1936년 혁신적인 전투기의 원형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건강이 더욱 악화된 1937년 42세를 일기로 자신의 전투기가 이후 얼마나 큰 성공을 거두는지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말았다.
◇ Supermarine Spitfi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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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영국공군하면 누구나 먼저 떠올리는 장면이 독일 폭격기침공의 경보를 받고 급히 자신의 전투기로 뛰어가는 조종사들의 모습일 것이다. 독일이 전격전의 폭풍으로 전유럽을 석권한 직후 영국마저 단숨에 집어삼킬 기세로 몰아 붙이던 [영국 본토 항공전 (Battle of Britain, 이하 BOB)]에서 영국은 막강한 독일공군의 공격을 2종의 우수한 전투기 덕에 물리칠 수가 있었다. 그 전투기들이 바로 허리케인과 스핏화이어였다. 특히 영국의 최고 전투기로서 메서슈미트 Bf 109에 맞섰던 것은 '영국을 지켜낸 전투기' 스핏화이어였다. 영국이 가장 암울했던 시절에 하늘을 지켜낸 수호신으로 최고의 명성을 얻은 것이다. 2차대전 전투기의 바이블격인 책으로 알려진 William Green의 저서 'Famous fighters of second World War'를 보면 저자는 아래와 같은 서술을 하고 있다.
'최고의 공격형 전투기는 P-51 무스탕이고 방어 전투기의 최고봉은 스핏화이어이다!'
* 개발 *
1차 대전이 끝난후 세계 전투기의 주류는 복엽기였다. 그러나 1934년으로 접어들면서 엄청난 속도로 항공기술이 발전을 해갔고 독일과 이탈리아가 고성능 저익 단엽전투기를 개발중이라는 소식이 영국에 들려왔다. 이탈리아의 피아트, 마티사 그리고 독일의 하인켈, 메서슈미트등이 그 개발업체였다. 영국의 항공업체들은 그때가지는 복엽기의 우수한 기동성이 단엽기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공중전에서 빠른 스피드가 점차로 중요시 되었고 결국 영국은 가장 뒤늦게 단좌복엽기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다. 결국 4개의 영국항공업체가 공군의 발주에 따라 설계경쟁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것은 호커사와 슈퍼마린사의 2개 업체였다. 호커사의 허리케인은 그 설계가 기본적으로 목재골조에 캔버스(천)를 댄 것이었으므로 제작이 용이했고 1935년 첫비행을 한후에는 만족할 만한 성능을 보여 영국공군에개 600대의 수주를 받아 먼저 생산을 개시했다.
그러나 슈퍼마린사는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는데 최신 기술을 적용하여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그들이 설계중인 고속단발기는 영국 최초의 전금속제 전투기로서 Stressed skin방식(외판이 부하를 감당하는 방식)을 채택하여 설계상 어려웠고 새로운 기술이 적용된 이 기체의 주익은 타원형으로 디자인 되있어 섬세한 제작방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드디어 첫선을 보였을 무렵 분명 외관은 매우 우아했고 기대했던대로 성능도 뛰어났으나 양산하기에 용이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당당히 허리케인과 함께 영국의 주력전투기로 채용되어 스핏화이어라 명명이 되었으며 1936년 3월 최초비행을 실시하게되어 그 실체를 나타내게 되었다.
스핏와이어의 외형은 뭐니뭐니해도 아름답다고 말해도 부족하기까지한 타원형의 우아한 날개가 대표적이다. 동체와 날개를 이어주는 우아한 곡선(현재는 블랜디드 윙바디라 부름)과 날렵한 유선형의 동체, 위로곡선을 그리는 기수의 턱 등등 영국인들의 표현대로 '하늘의 명검'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영국은 이 스핏화이어를 독일군의 침공에 대비하여 아껴두고 있었으며 프랑스 전선에는 거의 파견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군이 궁지에 몰리게 되자 스핏화이어는 대대적으로 덩커크 상공에 나타났다. 사상최대의 철수작전을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30만여명의 연합군병사들의 필사의 탈출을 돕는 과정에서 스핏화이어와 라이벌 Bf 109E가 그 첫만남을 가졌으며 양측의 조종사들은 서로 상대편에 대하여 두려움을 가진채로 다가올 대항공전 Battle of Britain으로 본격적인 대결을 미루게 된다.
스핏화이어는 Bf 109보다도 더 족보가 복잡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기종이다. BOB의 주역이었던 초기형인 Mk. I 부터 최종형인 Mk. XXIV까지 매우 다양한데다가 마지막에는 항공모함에 사용하기 위한 변형인 시파이어까지 그 종류가 주요 변종만해도 40여종에 달한다. 일단 이중에서 주로 활약했던 형은 크게 5가지를 꼽을 수 있다. 이것은 영국전투의 주역 Mk. I, II과 최대 생산형 Mk. V, 그리고 후기의 주력이었던 Mk. IX, Mk. XIV인데, 이형들을 중심으로 하늘의 명검 스핏화이어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하자.
* Spitfire Mk. I, II (1938-40) *
스핏화이어 Mk. I은 최초의 양산기로서 1030마력의 롤스로이스 머린 II, III엔진을 기본으로 장착하여 1938년 RAF (영국공군)에 배치되었다. 초기의 77대분은 피치가 고정된 2날개의 프로펠러가 장착되었으나 이후 피치가 2단계로 변형되는 3날개의 프로펠러가 장착되어 상승, 하강성능이 훨씬 향상되었다. 1939년 스코틀랜드상공에서 JU 88폭격기 1기를 격추하여 실전에 그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이후 1940년 6월 더욱 강력한 1175마력의 머린 XII형 엔진이 개발되면서 이를 장착한 모델이 나왔는데 이를 스핏화이어 마크 II (Mk II)라고 부른다. 이 형은 더 향상된 성능에 더불어 방탄 유리와 조종사 보호용 장갑판등이 장착되었다.
이 두가지 형의 스핏화이어가 영국전투에서 맹활약 했으며 스핏화이어를 대표하는 기체일 것이다. 라이벌이었던 독일의 Bf 109E는 스핏화이어 MK I, II형에 대하여 상승속도와 최대상승고도에서 앞서고 있었으며 스핏화이어는 Bf 109E에 대하여 수평속도에서 시속 592km로서 약 시속 15~20km가 빨랐으며 수평 선회성능이 우수하였다. 그러므로 실전에서의 두 기체는 거의 대등한 전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Bf 109E는 벤쯔엔진을 효과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연료분사장치가 있었으며 이로 인하여 급각도로 강하하면서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여 공중전시에 엄청난 이점이 되었다. 특히 독일공군의 조종사들은 급강하하며 적기를 기습하는 것을 좋아했데 이때까지 그들의 급강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전투기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스핏화이어는 달랐다. 어떠한 유럽의 전투기보다도 기동성이 좋아서 급강하공격을 효과적으로 희피하고 반격까지 해올수 있었는데 독일공군조종사들은 이를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 예로서 독일 에이스 베르너 묄더즈는 자신이 우세한 고도에서 포착한 스핏화이어가 급강하공격을 회피하고 효과적인 도주를 하는것을 보았다. Bf 109E의 기체강도가 급강하시의 급선회를 견딜수 없다는 것을 안 묄더즈는 스핏화이어가 도주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수 밖에 없었고 훗날 다음과 같은 말로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마치 상어의 공격을 받은 장어가 몸을 뒤틀어 피하는것 같았다!"
대부분의 독일 조종사들은 스핏화이어의 조종성을 두려워하여 선회전을 가지면 불리하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노획한 109E를 조종할 기회가 있었던 영국의 조종사들은 기동성의 측면에서는 두 기체가 거의 백중 하다라고 평가를 했다.
무장에서는 스핏화이어가 우세했다. 스핏화이어는 허리케인과 마찬가지로 브라우닝 7.7mm 기관총을 주익하나에 4정씩 8정을 장비하고 있었다. 이 8정의 기관총은 조종사가 좋아하는 거리 300피트~600피트 사이에 집중되도록 세팅이 되어 있었다. 이 기관총은 7.7mm로 구경은 작았으나 빠른 총구속도와 발사속도를 가져 전투기끼리의 공중전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이런 표준 무장방식을 A typ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Mk II형의 일부에서 화력 강화를 위하여 B type이라고 부른 무장 방식으로 20mm 히스파노 기관포 2문과 4정의 7.7mm 기관총을 장착하였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거의 성능이 대등한 2기종간에는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패가 갈리게되어있었던 것이다. 두전투기가 치열한 격전을 벌인 것은 BOB, 그러니까 영국 전투에서 였다. 이 BOB는 1940년 8월15일에 독일공군의 공격으로 시작되어 41년 9월에 정점에 잘했으며 이후 수개월간에 걸쳐 벌어진 독일과 영국간의 일련의 대규모 항공전을 말한다. 이 BOB는 결국 영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는데 이것은 스핏화이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BOB에서의 승부는 폭격기를 호위하는 Bf 109E와 폭격기를 공격하는 허리케인, 그리고 Bf 109E를 도맡아 상대하는 스핏화이어 Mk. I, II의 대결 양상이었고 따라서 스핏화이어의 주요 목표는 폭격기가 아니라 Bf 109E였던 것이다.
* Spitfire Mk. V (1941-1942) *
영국전투가 영국의 승리로 기울어 가고 있을 무렵부터 영국은 서서히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에 대한 폭격작전을 시작했다. 독일은 핵심 전력을 소련침공을 위하여 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키고 있었으므로 도버해협과 프랑스 상공에서는 RAF (영국공군)의 공세와 이를 저지하는 Luftwaffe (독일공군)의 항공전이 가끔씩 벌어지다가 영국이 점점 공세적인 작전을 펴자 점차로 가열되고 있었다. 이무렵 독일은 Bf 109F형을 등장시켰는데 이형의 우수한 성능에 놀란 RAF가 슈퍼마린사에 의뢰하여 발주한 것이 spitfire Mk. V형이다. 이 Mk. V형은 출력이 1440마력으로 더욱 향상된 머린 45엔진을 탑재한 것으로 외형에서는 Mk. II에 큰차이가 없으나 강력한 엔진 덕분에 비행성능에서 Bf 109F형에 뒤지지 않을만큼 향상을 보였다.
무장은 Mk. II의 B형을 이어받아 히스파노 20mm 기관포 2문과 7.7mm 기관총 4정으로 Bf 109F에 비해서 강력했다. 이후 독일과 영국의 주전선이 되었던 말타섬을 둘러싼 공방전과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영국군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나타나 많은 활약하였으며 총 생산기수 6479기로서 스핏화이어 시리즈중 가장 많은 생산양을 자랑했을 만큼 대전 중반기 RAF의 주력 전투기였다.
* Spitfire Mk. IX * (1942 - 45)
1942년 초부터 배치되기 시작한 형이다. 독일의 FW-190의 둥장으로 공중전에서 Spitfire Mk. V형의 열세가 명백해 짐에 따라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설계된 기체이다. 더욱 향상된 1660마력의 머린 61엔진을 장착하였다. 기본적으로 Mk. V형에서 큰변화는 없으며 신형 엔진 장착을 위한 최소한의 기체 개량만 실시 되었다. 기체자체의 설계가 워낙 뛰어난 스핏화이어였으므로 강력한 엔진을 탑재하는 것만으로도계속 일취월장의 변화를 보였다.
이 Mk. IX형이 보급되면서 영국공군기들은 독일의 신예기들에 대항할 수 있었다. 이 Mk. V형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생산이 계속되었으며 총 생산기수는 5674기에 이를 정도였다. 그러나 독일의 주전선이 독-소전으로 옮아가고 1943년부터 미군의 참전하면서 스핏화이어의 활약은 점점 줄어들 게 되었다. 폭격기 호위를 할만큼 멀리 날지 못했으므로 주로 미군의 P-51이나 P-38이 공중전을 점차로 맡았기 때문이다.
* Spitfire Mk. XIV * (1944 - 45)
1943년 롤스로이사는 머린 엔진보다 훨씬 강력한 1735마력의 그리폰 엔진을 개발하였다. 실험적으로 장비된 Mk. XII형이 우수한 성능을 보임에 따라서 이 엔진을 본격적으로 장착하기로 하여 이때부터 스핏화이어는 머린 엔진을 장착한 형과 그리폰 엔진을 장착한 형의 2가지로 생산이 되게 되었다. 그리폰 엔진은 머린엔진보다 약간 길고 컸기 때문에 기수의 설계가 변경되어 더 길어지고 뾰족한 형태의 기수를 가지게 되었다. 옆모습을 보았을 때 기존형의 우아한 곡선을 가진형은 머린엔진을 장착한 것이고, 좀더 긴 형태의 기수를 가진 것이 그리폰 스핏화이어이다. 본격적으로 양산이 된형은 Spitfire Mk. XIV형으로 자그마치 2050마력의 그리폰 65엔진을 장비하게 되었다.
최초의 Mk. I형이 1030마력의 엔진을 장비했던 것에 비하면 얼마나 큰 힘을 더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형에 이르러 스핏화이어의 최고속도는 무려 시속 720km에 이를 정도의 고속이었다. 이 Mk. XIV형부터는 E-type이라 불린 20mm 히스파노 기관포 2문과 12.7mm 기관총 2정을 장비한 형도 생산되었다. 이 형부터는 동시대의 Bf 109G나 FW 190에 비해서 훨씬 앞선 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공군이 점차로 제공전투에서 물러서고 있었으므로 독일전투기와의 공중전은 별로 없었다고 하나, 기체의 빠른 속도를 살려 V-1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큰 활약을 했다고 한다.
* Summary *
스핏화이어는 영국인들이 'Immotal Spitfire (불멸의 스핏화이어)'라고 부를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는 기체이다. 조국의 운명이 풍전등화였던 암울한 시절에 혜성처럼 자신들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믿고 있는 것이다. 이로인해서 스핏화이어의 명성은 전세계로 퍼졌고, 전투기 자체의 유명세로는 스핏화이어만한 기체는 없다고 단언할 만하기도 하다. 전쟁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적인 개량을 통해서 2차대전의 영국 전투기 하면 스핏화이어로 통할 만큼 모든 전장에서 활약했으며 전쟁 말기에는 시 화이어 (Sea fire)로 개조되어 항모에 탑재되기도 했다. 시 화이어는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다. 아마도 이 스핏화이어는 항공팬이라면 꼭 한번 보고싶어하는 기체일 것이며 항공의 역사가 계속되는한 영원히 전설의 전투기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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